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작 《절규(The Scream)》는 단지 한 인물의 괴성을 묘사한 그림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근대인이 경험한 정체성의 혼란, 존재의 불안, 사회적 고립이라는 실존적 문제를 시각적으로 드러낸 상징적인 회화입니다. 붉은 하늘, 일그러진 공간, 귀를 막고 절규하는 인물은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당시 사회 전반의 감정 상태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절규》의 시대적 배경, 뭉크의 정신세계, 표현주의적 기법을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왜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회자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뭉크의 내면과 ‘절규’의 탄생: 개인 심리의 집약체
에드바르 뭉크는 노르웨이 출신의 상징주의 화가로, 19세기 말 유럽 화단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한 인물입니다. 그는 유년기부터 연이은 가족의 죽음(어머니, 누이), 아버지의 냉정한 신앙 교육, 자신의 만성 질환, 불안장애 등 지속적인 상실과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은 그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는 이를 고스란히 화폭 위에 표현하게 됩니다.
《절규》는 이러한 뭉크의 개인적 기억과 정서의 결정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서 “나는 길을 걷고 있었고, 하늘은 피처럼 붉었으며, 나는 자연 전체가 절규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썼습니다. 이 말은 《절규》에 등장하는 붉은 하늘과, 인물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의 직접적 배경이 됩니다.
작품 속 인물은 일반적인 자화상이나 인물화와 달리 정체성이 지워진 존재입니다. 성별도, 연령도 불분명하며, 인체라기보다 해골이나 유령 같은 형상에 가깝습니다. 이는 뭉크가 자신을 포함한 근대인을 ‘개인의 얼굴을 상실한 존재’로 인식했다는 철학적 고백이기도 합니다.
중앙 인물은 극도의 공포와 고립 속에서 내면의 불안을 외부로 내지르지만, 주변 세계는 이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는 뭉크가 느꼈던 자신만의 고통을 사회가 외면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며,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종종 경험하는 고독한 고통의 형태를 압축적으로 전달합니다.
근대의 전환기와 집단적 불안: 시대와 그림의 대화
19세기 말 유럽은 겉으로 보기에는 과학, 산업, 기술이 발전한 ‘진보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신의 죽음, 도덕의 해체, 인간 정체성의 위기가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고, 프로이트는 인간의 이성을 무너뜨리는 무의식의 존재를 말했습니다.
뭉크의 《절규》는 이와 같은 정신사적 충격과 혼돈을 회화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기존의 종교나 전통, 공동체가 더 이상 개인에게 안정을 제공하지 못하던 시기,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정서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속 뒤편의 인물 두 명은 절규하는 주인공과 철저히 단절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무심히 자기 갈 길을 가며, 이 공포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듯 행동합니다. 이는 도시화와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던 당시, 사람들 사이에 깊어지던 정서적 단절과 무관심을 표현한 장치입니다. 절규는 외부로 표출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사회 속에서 더욱 고조됩니다.
이러한 근대화의 역설은 《절규》를 단순히 한 인물의 정신 상태를 넘어서, 사회학적·철학적 작품으로 끌어올립니다. 이 회화는 인간이 기술의 진보와 함께 얼마나 더 깊은 외로움과 정체성의 불안 속으로 밀려났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감정을 그리는 회화: 색과 선, 왜곡의 힘
《절규》는 전통적인 인물화, 풍경화, 종교화와는 명백히 구분됩니다. 뭉크는 이 그림에서 사실적 재현보다는 감정의 전달과 심리적 몰입을 목적으로, 형태와 색채를 의도적으로 왜곡했습니다. 이는 표현주의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혁신적인 시도로, 미술사적으로도 큰 전환점을 이룹니다.
하늘은 진홍색, 주황색, 노란색이 혼재되어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피오르드 위로는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산과 강은 현실과 다르게 구불구불하게 일그러져 있습니다. 이 모든 요소는 당시 뭉크가 느낀 감정을 외부 자연으로 투사한 결과이며, 이는 회화가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뭉크는 색을 단순히 꾸미는 요소가 아닌, 감정의 강도와 방향성을 전달하는 언어로 활용했습니다. 따라서 화면 전체가 하나의 감정체로 작동하며, 관람자는 그 안에서 단지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소용돌이를 체험하게 됩니다.
뭉크는 이처럼 색과 선의 감정적 사용을 통해, 후에 등장할 칸딘스키, 노울, 에곤 실레, 로스코 등의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림이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어떤 감정을 유발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새로운 회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결론: ‘절규’는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절규》는 19세기 말의 예술 작품이지만,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 중 하나입니다. 이는 이 그림이 특정 시대나 사건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불안, 공포, 고독—을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뭉크가 그린 인물의 얼굴은 어쩌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얼굴일지도 모릅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기술이 진보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개별화되고, 고립되고,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대인의 감정 상태는 뭉크의 《절규》가 그려낸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술은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때, 그 자체로 공감의 언어가 됩니다. 뭉크의 《절규》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오늘도 우리는 이 그림 앞에서 우리의 내면을 비춰보게 됩니다.